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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덕유산이라는 거대한 두 영봉 사이에 안긴 경남 함양군 안의면은, 조선 시대 영남 사림의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던 화림동 계곡의 관문입니다. 옛 안의현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오늘날 조용한 면 소재지로 남아 있지만, 걸음걸음마다 유서 깊은 유교 문화유산과 묵직한 내륙 장터의 내력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끝자리 3일과 8일에 열리는 안의 5일장은 인근 서상면과 서하면, 거창군 남상면 일대의 농민들이 모여드는 영남 서북부 내륙의 유서 깊은 장터입니다. 화려하게 포장된 관광형 시장과 달리, 시골 사람들의 담백한 손길과 소박한 흥정이 오가는 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금호천 물줄기 곁에 펼쳐지는 고즈넉한 난전 풍경
안의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금호천 다리를 건너면 장터 중심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장날 아침이면 천변을 따라 푸른 천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덕유산 자락 고랭지 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채소들이 길가에 펼쳐집니다.
안의 장터에서 특히 눈에 띄는 품목은 큰 일교차 덕분에 단단하고 향이 짙은 뿌리채소와 산약초입니다. 함양의 명물인 산양삼과 도라지, 굵직한 생더덕이 투박한 바구니마다 가득 담겨 특유의 쌉싸름한 흙냄새를 풍깁니다. 노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잔뿌리를 정성스럽게 다듬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과장 없는 산골의 억척스러움과 넉넉함이 동시에 전해집니다. 계절에 따라 자연산 버섯이나 잘 말린 곶감이 등장하기도 하여 걸을 때마다 시골 장터 특유의 계절감을 체감하게 됩니다.
우시장의 역사에서 피어난 안의 원조 갈비탕 한 그릇
안의 5일장을 찾았다면 장터 골목 안쪽에 자리한 전통 갈비탕 골목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과거 영남 내륙에서 손꼽히는 큰 소 시장이 섰던 안의면은 자연스럽게 소고기를 활용한 탕과 찜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이곳의 갈비탕은 도심의 맑고 얕은 국물과 확연히 다릅니다. 큼직한 무쇠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푹 고아낸 소갈비에 대파와 인삼, 무를 듬뿍 넣어 끓여내 국물이 진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담백합니다. 뼈에서 부드럽게 발라지는 갈빗살을 양념장에 찍어 먹고, 밥 한술을 진한 국물에 말아 깍두기를 얹어 넘기면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며 장거리 도보 이동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화림동 계곡 정자 군락과 농월정으로 이어지는 도보길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장터를 빠져나와 화림동 계곡을 따라 조성된 선비문화탐방로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조선 정유재란 당시의 충절이 깃든 안의향교를 지나 계곡 하류로 내려가면, 너럭바위 위에 단아하게 솟은 농월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달을 희롱하며 노닌다'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농월정 아래로는 맑은 계곡물이 넓은 백운암 바위를 매끄럽게 타고 흐릅니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물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끌벅적했던 장터의 활기와 맑은 자연의 고요함이 교차하며 걷기 여행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선비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글귀들을 하나씩 찾아 읽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인문학적 즐거움입니다.
안의 뚜벅이 여행자가 명심해야 할 동선 주의사항
함양읍 시외버스터미널과 안의터미널을 오가는 농어촌 버스는 배차 간격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비교적 규칙적인 편이지만, 오후 시간대 서울이나 대구 방면으로 직행하는 시외버스는 편수가 제한적입니다. 안의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귀가 편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어야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안의 장터에서 농월정까지 이어지는 도보 코스는 편도 약 4km 구간으로, 계곡을 따라 걷는 데 1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보행로가 대체로 잘 닦여 있으나 바위 지대와 흙길이 일부 섞여 있으므로 밑창이 편안한 트레킹화를 착용하는 것이 발목 피로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핵심 요약
- 안의 5일장은 끝자리 3일과 8일에 열리며, 덕유산 자락 고랭지에서 자란 향 짙은 산약초와 토속 뿌리채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 옛 우시장 내력에서 출발한 안의 갈비탕 골목에서 가마솥에 진하게 우려낸 소갈비탕으로 든든한 장터 미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장터 탐방 후 화림동 계곡을 따라 농월정과 너럭바위 정자 군락을 걸으며 영남 선비 문화의 역사와 풍류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회문산 깊은 골짜기 자락에서 만난 순박한 약초 좌판과 조용한 돌담길이 펼쳐지는 '전북 순창 쌍치 5일장 도보 기행'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시골 장터 주변의 오래된 정자나 숲길을 걸을 때 자연의 소리 중 어떤 소리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시나요? 자유롭게 생각을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