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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의 험준한 산세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전북 순창군 쌍치면은, 고추장의 본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순창읍내에서도 차로 30분 이상 꼬불꼬불한 산길을 더 들어가야 닿는 깊은 두메산골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빨치산의 주 활동 무대 회문산 자락을 품고 있는 이곳은, 지금도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태고의 고즈넉함과 때 묻지 않은 시골 풍경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끝자리 3일과 8일에 서는 쌍치 5일장은 읍 단위 대형 전통시장처럼 번쩍이는 간판이나 규격화된 판매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면사무소 앞 공터와 작은 골목길을 따라 열리는 난전이 전부이지만, 높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소박한 일상과 깊은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귀한 장터입니다.
첩첩산중 회문산 자락이 내어준 청정 산약초와 토속 나물
쌍치면 중심에 내려서면 높다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장날 아침이면 10여 개 남짓한 소박한 천막과 돗자리가 길가에 깔리는데, 이곳에 나오는 농산물들은 모양새가 투박할지언정 향과 신선함만큼은 도심의 어느 마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해발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산간 지형 덕분에 쌍치 장터의 중심은 단연 산약초와 야생 나물입니다. 어르신들이 회문산 골짜기 숲속에서 직접 채취한 당귀, 삽주, 둥굴레 뿌리가 흙이 묻은 채 좌판에 올라와 특유의 진한 한약 냄새를 풍깁니다. 봄과 여름에는 참취와 곤드레, 다래순이, 가을철에는 쌉싸름한 야생 고들빼기와 토종 더덕이 나무 바구니에 수북이 쌓입니다. 노점 바닥에 앉아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마른 약초 잎을 일일이 골라내는 어르신들의 투박한 손길 속에서 삶의 깊은 무게와 순박함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투박한 손두부와 장터 묵사발 한 그릇의 소박한 위로
쌍치 5일장 골목길 모퉁이에 들어서면 구수한 콩 삶는 냄새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화려한 외식 메뉴가 발달하지 않은 산골 장터에서 가장 사랑받는 별미는 마을 방앗간에서 갓 짜낸 촌두부와 메밀 묵사발입니다.
토종 콩을 맷돌에 곱게 갈아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여내고, 천연 간수를 넣어 굳힌 손두부는 베어 물 때마다 고소하고 담백한 콩 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여기에 밭에서 갓 뜯어온 알싸한 파를 썰어 넣은 조선간장 양념장을 살짝 얹어 먹으면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습니다. 멸치와 다시마로 맑게 우려낸 육수에 투박하게 썬 묵과 잘 익은 묵은지를 송송 썰어 넣은 시원한 묵사발을 들이켜면, 굽이진 산길을 달려오며 생겼던 멀미와 텁텁함이 깨끗하게 가라앉습니다.
돌담길 따라 걷는 훈훈한 골목과 피노마을 녹두장군 유적지
장터 구경과 소박한 요기를 마친 뒤에는 천천히 발길을 돌려 면 소재지 뒤편의 한적한 마을 골목으로 향해 봅니다. 밭에서 골라낸 납작한 자연석과 황토를 섞어 쌓아 올린 옛 돌담길이 집집마다 이어져 걷는 이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듭니다. 감나무 잎사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돌담 밑에 핀 채송화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시계가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마을 외곽길을 따라 약 2km 정도 걸어가면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된 역사적 현장인 피노마을 유적지에 닿을 수 있습니다. 조선 말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며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들길을 걷는 시간은, 단순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이 땅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되새기는 뜻깊은 인문학 산책이 되어줍니다.
쌍치 뚜벅이 여행자가 알아두어야 할 실전 주의사항
쌍치면은 순창읍내나 정읍시에서 출발하는 농어촌 버스를 이용해야 진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읍 방면이나 순창읍으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운행 횟수가 매우 적고 간격이 2시간 이상 벌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붙은 농어촌 버스 운행 시간표를 먼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복귀 시간을 정해두어야 합니다.
또한 면 소재지 장터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하므로, 정오를 넘기면 어르신들이 짐을 챙겨 귀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급적 오전 9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장터에 도착하는 동선을 잡아야 활기 있는 좌판 풍경을 만날 수 있으며, 장터 내에는 카드 단말기가 거의 없으므로 1천 원권과 5천 원권 지폐를 여유 있게 챙겨가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핵심 요약
- 쌍치 5일장은 끝자리 3일과 8일에 열리며, 회문산 깊은 골짜기에서 자생한 청정 산약초와 야생 나물이 풍성한 산골 난전입니다.
- 장터 먹거리로는 가마솥에 장작불로 쑤어낸 담백한 촌두부와 묵은지를 얹은 시원한 메밀 묵사발을 추천합니다.
- 장터 탐방 후 마을 돌담길과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자취가 서린 피노마을 유적지를 연계해 걸으며 차분한 역사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충남 서천으로 발길을 옮겨, 시간이 멈춘 듯한 1970년대 근대 마을 골목과 장터 도토리묵밥이 기다리는 '충남 서천 판교 5일장 도보 기행'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깊은 산속 작은 마을의 돌담길이나 옛 역사 유적지를 걸을 때 어떤 생각에서 마음의 차분함을 찾으시나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경험을 남겨주세요.

